[항공 사고] 최초의 제트여객기 추락사고 - BOAC 781 Crash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10. 22:47 ::항공 사고::



( 최초의 상용 제트여객기였던 드 해빌런드 사의 Comet 1, 사진에 나와있는 기체는 사고기인 G-ALYP, 애칭은 Yoke Peter입니다. )


- Q.Comet(코메트), 어떤 항공기였을까? -


1949년 7월 27일, 영국의 드 해빌런드 사는 Hatfield에서 Comet 1이라는 최초의 상용 제트여객기를 선보입니다.

Comet 1은 당시 나왔을 때, 36명에서 44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제트여객기였습니다.


동체길이 28 M 날개길이 35 M, 높이 9 M, 날개 면적 2,015 평방 피트였습니다. 또한 동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 후퇴익을 채용한 저익기였습니다.

순항속도는 740km/h, 최대 운항고도는 42,000ft였고, 엔진은 Halford H.2 Ghost 50 터보제트 엔진 4기를 장착한 신형 항공기였습니다.


조종석에는 승무원 4명(조종사 2명, 항공 기관사 1명, 항법사 1명)이 탑승합니다.


또한 에어컨, 전기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와 여압장치, 조종사의 용이성을 증가시켜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고,

유압장치는 총 4개(메인 유압 시스템 1개, 예비 유압시스템 2개, 비상 유압 시스템 1개 )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시스템이 추가되어, 조종사가 편하게 비행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체 구조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781편의 사고 원인이 되었습니다.


- 781편 히드로로 비행을 나서다. -


781편은 싱가포르의 호놀룰루를 출발해, 이탈리아의 로마를 거쳐서 영국 히드로 국제공항으로 갈 예정이였습니다.


781편의 탑승 승무원은 기장인 앨런 깁슨(31, BOAC 최연소 조종사)과 WJ Bury, 항공 기관사인 FC McDonald, 항법사인 LP McMahon이 탑승했습니다.

객실에는 29명의 승객과 객실 승무원 2명이 탑승합니다. 이중에는 BBC의 유명 기자와 BOAC 스태프 3명, 그리고 British European Airways(B.E.A)의 조종사 등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1954년 1월 10일 오전 10시 18분, 781편의 화물이 최종적으로 적재되고, 781편의 비행 점검이 완료됩니다.

먼저 BOAC 소속의 프로펠러 기체를 보낸 후, 10시 30분, 781편은 중간 기착지였던 로마를 이륙합니다. 그리고 런던 히드로로 갈 예정이였습니다.



이륙 8분 후인 오전 10시 38분, 781편은 11,000m(36,000ft)까지 상승합니다. 그리고 기장은 여압장치를 이용해 기내 기압을 2,500m 고도의 기압과 동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0시 41분, 관제소와 교신을 취합니다. 이때 지중해 상공을 날고 있었고, 이것이 관제소와의 마지막 교신이 되었습니다.

약 10분이 지난 후인 10시 51분, 781편은 먼저 이륙했던 BOAC DC-4기와 교신을 시도했고, 교신을 하던 중, 갑자기 781편과의 교신이 끊겼습니다.


DC-4기는 781편과 교신을 시도했으나, 전혀 응답이 없었고 관제소에 이를 알립니다.

관제소는 781을 편과의 교신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고, 교신이 끊긴지 24분 후, 781편이 추락했다는 소식을 보고받습니다.


추락 지점 근처의 엘바섬에서는 어선들이 사고지점에 도착해 탑승자 35명의 시신중, 15명의 시신을 수습합니다.


무슨 이유로 781편이 정상적인 비행 도중, 갑자기 교신이 끊기면서 추락했을까요?


사고는 처음부터 난관에 빠지게 됩니다. 사고가 일어난 때는 1954년, 블랙박스가 개발되기 2년 전(1956년 개발)이여서 사고 원인을 쉽게 밝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781편이 지상이 아닌 바다에 추락했기 때문에 기체 잔해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잠수부를 동원해서 사고기 잔해가 어디있는지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781편의 사고조사에 대해 잔해를 수거하여 코메트 사고조사를 밝힐 것을 요구합니다.

처칠 수상은 영국 해군을 투입합니다. 하지만 영국 해군도 난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에서 주어진 단서는 여러가지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있었습니다.


1. BOAC소속 DC-4기가 비행을 하면서 781편과 교신 도중, 갑자기 교신이 끊겼다.


2. 추락 지점 근처인 엘바섬에서 어부들이 하늘에서 무엇인가 불타면서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3. 희생자들 대부분은 머리에 골절이 있었고, 폐가 심하게 손상(파열) 되었다.


이 단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은 영국 해군과 원양 구조선, 잠수정들을 투입해 사고기 잔해를 직접 수거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사고기의 작은 잔해를 발견하여 수거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일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BOAC의 코메트기의 운항을 재개하는 것 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고, 바로 1954년 4월 8일,


남아프리카 항공 201편(코메트 1, G-ALYY)이 승객 14명과 승무원 7명을 태우고 로마를 출발해 이집트로 가던 도중, 관제소에 11,000ft 상공이라고 보고하고 교신이 끊깁니다. 이 사고로 인해 BOAC은 코메트기의 운항을 사고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전부 중단시키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21명이 더 사망합니다.


201편의 사고 원인도 781편의 사고 원인과 똑같이, 승객들 모두 머리가 골절되고, 폐가 심하게 손상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781편 사고와 달리, 201편은 해저 깊숙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잔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781편의 잔해가 점점 모이기 시작하고, 목재 틀에 781편의 잔해를 복원합니다.


( G-ALYP, 781편의 복원 사진 )


목재판에 붙인 781편 잔해와 각종 실험등을 이용해 원인을 분석한 끝에, 781편은 여압이 된 상태에서 급격한 감압이 일어나(폭탄이 터지는 수준) 승객들이 천장에 머리를 박았고, 급격한 압력 변화로 인해 폐가 파열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코메트기는 이렇게 되었을까요? 


코메트기에 사용된 객실 여압장치는 승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 기체 알루미늄 합금 외피에 부담을 줍니다. 그리고, 사용된 외피는 두께가 약 0.5mm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비행을 하면서 계속 항공기에 가해지는 압력이 올라갔다가 내려가기 때문에 많은 부담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드 해빌런드 사는 알루미늄 합금이 시험 과정에서 10,000번의 비행에도 안 부셔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781편 사고는 수조 실험을 동원해 같은 코메트기를 수조에 넣고, 물을 이용해 압력을 높였다가 줄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 코메트기의 알루미늄 외피가 코메트기의 창문과 문을 시작으로 벌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창문과 문은 동체를 잘라낸 것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다른 부위에 비해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코메트기의 창문은 접착된게 아니라, 드릴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리벳을 박아버렸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이였습니다. 즉, 초기 제작 과정에서부터 중대한 결함이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또 잔해를 조사한 결과, 781편은 피로 균열로 인해 추락한 것을 확인했으며, 피로 균열로 인해 먼저 찢겨져 나간 부분은 코메트기 동체 위에 있던 창문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였습니다. 이 창문 역시 리벳으로 박힌 창문 중 하나였습니다. 여압장치도 한 몫을 했고, 반복된 여압이 결국 문과 창문 부분의 부담을 더욱 크게 만들었던 것 이였습니다.


결론은 코메트기 제작 과정에서 창문에 박은 리벳이 미세한 균열을 남겼고, 781편이 여러 번 비행을 하면서 반복된 여압과 항공기가 상승하면서 압력이 점점 높아졌고, 이로 인해 이 미세한 균열이 결국 금속 피로 균열로 진행되었고, 추락 직전에는 2~3cm까지 벌어지면서 결국 동체 위의 창문을 시작해, 승강타가 찢겨져 나가고, 후미, 조종석 등이 차례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였습니다.


드 해빌런드 사는 이것을 반영해, 코메트를 다시 개발했지만, 그 시간동안 이미 보잉과 더글라스는 DC-8, B707이라는 대형 제트여객기를 만들은 뒤였고, 결국 드 해빌런드 사는 1964년, 인수됩니다. 코메트 기는 여객형으로는, 1997년 3월 14일 전부 퇴역하였고, 군용기로는 2011년도에 전부 퇴역하게 됩니다. 


최초의 상용 제트여객기 Comet 1, 최초로써는 성공했으나 제작 당시에 있었던 중요 결함이 결국 참사로 불러왔고, 56명의 사람들이 희생당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을 교훈삼아서, 오늘날의 항공기가 있습니다. 


781편의 희생자 추모비는 지금도 엘바섬에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