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설] 늘어난 항공운항학과, 과연 조종사의 문턱은 낮아졌을까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1. 1. 00:27 ::항공 사설::

제가 싫든 좋든, 어쨌든 수능이 무의미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하나 붙기만 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막상 붙고나니 허무하더랍니다.

(+거기다 내심 기대걸고 높은 곳 썼는데 떨어져서 무기력감에 (아직도) 시달리기도 했고요)

자, 그럼 오늘 할 이야기는 이 글을 보고계실지도 모르는 고3이나 고등학생 분들과 관련된, 대학에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항공 관련 뉴스를 보다보면 10번에 한번꼴로, 적어도 20번에 한번 꼴로 나오는 이야기가 조종사 부족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특히 K모 국적항공사의 조종사 이직과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지요.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들에 대한 처우나 노사관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주제에서 한참 벗어나니 (무엇보다 검수담당 스텝님의 눈초리가 무서우니) 다음번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흐름 아래 최근 몇년동안 국내에 단 두곳이였던 항공 운항학과, 그리고 조종사 교육원 등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새는 그래도 주춤한 편이지만 예전에 조종사하면 공사/항공대/한서대/그리고 유학. 이 네가지 루트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일단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루트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타 대학 항공운항학과의 경우 같은 대학 내부에서는 비교적 컷트라인이 높은 편입니다만 한서대, 항공대, 공사 입시를 생각하면 조금은 널널한 편입니다.


제가 왜 '조종사가 될 수 있는' 이 아닌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이라고 했을까요?

안타깝지만 운항학과 나온다고 해서 모두 조종사가 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니, 조종사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는데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거죠?

일단, 지금의 조종사 부족 현황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항공 운항학과를 통해 배출되는 라이선스를 가진 졸업생들의 경우 약 150시간~250시간 정도의 타임빌딩, 그리고 PPL과 계기비행한정자격증명에 +a로 멀티엔진레이팅, 상업용 조종사 자격증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상업용 조종사 자격증 주면 꽤 괜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종사를 꿈꾸는 많은 분들이 희망하는, A항공이나 K항공을 과연 항공운항학과를 갓 나온 학생들이 들어 갈 수 있을까요? 정답은 NO 입니다.

K항공의 경우 1,000시간의 타임빌딩을 요구합니다. A항공의 경우 500시간의 타임빌딩을 요구합니다. 국내에서 이를 만족시켜주는 항공운항학과는 '없습니다'. 네, 진짜 500시간 1,000시간 채워주는 비행학교는 없습니다. 보통 항공 운항학과의 경우 2학년때 까지 실습보다는 이론위주의 학습이 이루어집니다.(모 학교의 경우 대학미적분학이 3학점으로 들어가있더라구요.) 그리고 나머지 2년 동안 실습이 이루어지는데 실질적으로 500시간 1,000시간 채우기에는 2년의 시간이 그닥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떤 대학은 등록금+실습비를 따로 요구합니다. 본인이 부담하던 부모님이 부담하던 금수저 은수저 아닌 이상 정말 '등골 부러지는' 일이지요.

결국 항공 운항학과 졸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본인이 스스로 채우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루트가 존재합니다. 동남아나 국내 조종사 교육원에서 크로스컨트리 하면서 비행시간 채울 수도 있고(근데 이거 좀 많이 비쌉니다), H대학교의 경우 FIC 라고 해서 운항학과 학생을 소정의 과정을 거쳐 교관 조종사로 키워서 타임빌딩을 하게 합니다. 또 국내에 있는 LCC나 세스나나 파이퍼 위주의 General Aviation 항공기를 운영하는 업체(주로 항공사진 촬영 업체) 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관으로 일하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LCC나 다른 업체에서 일해서 타임빌딩 할 수 있는 건 본인이 정말 열심히 하고 운이 좋으면 할 수 있지만 문이 조금 좁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대학들은 항공사와 협력을 체결해서 학생들에게 기회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C대학교의 경우 E모 LCC와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아, 물론 그 연계과정에 또 몇천, 몇억이 필요합니다. 대학생 되면 부모님한테 손 안벌릴줄 알았는데 이거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항공운항학과 나와서 결격사유 없고 학점 잘 받으면 조종사 되는데 큰 문제 없었습니다. 항공운항학과 나오지 않더라도 항공사들은 자체 운항인턴 제도를 가지고 조종사를 교육하여 교육비를 월급에서 분할해서 납부하게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조종사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조종사 양성 많이들 안합니다. 조종사를 '수입해서' 쓰면 되니까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니까요. 조종사와 항공사를 연결시켜주는 에이전시가 있어서 에이전시에서 '사오면' 되니까요. 신자유주의란게 참 기업하기 편한 시스템 입니다. 아무리 조종사가 부족하다고 해도 그쪽이 더 싸게 먹힙니다.

항공운항학과 나와서 졸업장 따도 +a의 비용투자가 없으면 조종사 되기 힘들고 반면 경제적 여유 있으면 대학 전혀 상관없는 곳 졸업해도 유학가거나 조종사 교육원가서 비행시간 채우고 자격증 따면 좀 낫지요.

중학교 사회시간때 우리는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고 배웠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법칙에 따르면 수요가 많아지면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갖춘 한 그 문턱이 낮아지는게 맞겠죠. 그런런데 왜 조종사가 되는게 그렇게 힘든건걸까요? 

자,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그 '최소한의 자격요건' 이라는게 꽤 높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는 숨겨진 공급, 조종사 공급 에이전시라는게 존재합니다. 항공사들이 겉으로는 조종사 부족하다고 해도 일단 급하면 수입할 수 있는 조종사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 조종사의 경우 직접 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편의가 존재합니다.

물론 이렇게 계속 부족한 조종사를 수입해서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1년 평균 비행시간이 1,000시간을 넘어가며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입니다. 언젠간 관리되어야 할 리스크이지요. 하지만 단기간에 조종사의 문턱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조종사는 사람들의 생명이 달린 직업인 만큼 그 문턱이 낮아진다는데 필요한 공부량이나 기량이 낮아지면 안되겠지요. 제가 말하는 문턱은 시간과 비용, 그 중에서도 비용에 관한 문제 입니다.

물론 공군사관학교라는 선택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공군 조종사는 조종사이기 이전에 군인, 그것도 군을 이끄는 장교입니다. 조종사로서 적성에 맞아도 군인이 적성에 안맞으면 힘듭니다. 공군  조종사와 민항 조종사로서 요구되는 에티튜드도 조금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어른들 얘기 들어보면 막 꿈에 계속 도전하라고 하시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조종사라는 직업, 적성에만 맞으면 참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이직률도 낮고 (장점이 될수도 있고 단점이 될수도 있지만) 계속 새로운 거 공부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물론 이런 직업을 가지기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요. 그런데 노력이 아니라 개인의 금전적 여유에 의해서 좌우된다는게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