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지식] 우린 대화가 필요해 - CRM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5. 31. 21:11 ::항공 지식::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자랑스레 여길만큼, 아직까지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유교권 국가에서는 그만큼 예의를 중요시 합니다. '칠거지악'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엄격하고 반인륜적이기 까지한 성리학의 규율, 윗사람을 공경하고 윗사람을 존중하는것, 예의와 윗사람에 대한 존중은 '동방예의지국' 에서 자신의 목숨만큼 중요히 여겨 집니다. 더군다나 안동김씨 세도정치, 일제강점기, '10월 유신'과 '5공' 으로 대표되는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이런 수직적인 위계질서는 더욱더 굳건히 자리잡고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여러가지 사상적 기반으로 왜곡되어 집니다. '애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되지도 않는 말이나 소위 말하는 '빠따', 군내 가혹행위, 교정에서 몇몇 교사들이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군기' 라는 단어는 이런 반인륜적인 수직관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필요하고 반인륜적인 수직관계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질병이며 고치려고 해도 좀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는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냉철한 판단력과 고도의 정교함, 그리고 객관성을 필요로 하는 항공이라는 분야에서는 이런 수직적인 서열문화가 조금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좁은 조종실 내에서, 상호간의 협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조종실에서 이런 수직적인 서열문화가 빚어낸 참사의 결과는 끔찍합니다. 

219명의 사상자를 낸 트리폴리 참사, 229명의 사상자를 낸 대한항공 801편 사고 역시 사고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로 조종실내 수직적인 문화로 뽑히고 있습니다. 이런 수직적인 문화를 수치로 나타낸것을 PDI(Power Distance Index) 라고 하지요. 이 PDI는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적이 있습니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데다가 굴곡진 현대사를 지닌 한국은 물론 높으편이었구요. (물론 십수년전 나온 연구 결과이기에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이런 수직적인 위계 문화로 발생되는 사고를 막기위해 90년대 후반부터 국내 항공사들은 본격적으로 조종실내 수직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데 그 중하나가 조종실내에서 '수평적인' 의사 소통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기장과 부기장의 관계를 생각하면 기장은 무조건 명령하고 부기장은 기장이 내린 오더만 충실히 이행하는 그런 관계를 상상하긴 쉬운데 그런 관계가 되어서도 안되고 그런 관계도 아닙니다. 비행기 조종은 고도의 집중을 한곳도 아닌 동시에 여러곳에 해야하는 복잡한 일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오랫동안 훈련된 조종사도 사람이다보니 그 과정에서 당연히 놓치는 것이 발생합니다. 시야를 지속적으로 분산해서 각종 계기를 Cross Check 하면서 비행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각종 장비를 이용해 해결방안을 찾아내 적용해야 하는데 이게 기상조건도 좋고 비행기 상태도 좋으면 잘 이루어지는데 날씨가 안좋거나, 비행기 상태가 안좋거나 하면 자꾸 문제가 있는 쪽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동시에 어떤 문제가 생기게되면 한명의 조종사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될정도로 업무가 늘어나기 떄문에(사실 평시에도 비행기 사이즈가 조금만 커져도 조종사 한명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닙니다만) 동시에  한쪽은 비행기를 조종(Flight Control 에 Input을 준다거나)하고 한쪽은 계속해서 계기를 모니터링하면서 서로 조언을 해주어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숙련된 기장이라도 부기장의 조언을 무시하거나 그럴순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숙련되었고 자신을 믿는다 한들 자신이 실수를 안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PDI 가 높아질경우, 즉 위계질서가 강하면 강할수록, 아무리 머릿속으로는 부기장이 기장의 잘못된 판단, 혹은 놓칠 수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나 조언, 제언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직장 상사' 인 기장에게, '기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기장에게 조언을 하기란 쉽지 않을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권위와 명예를 무시한 행동으로 비추어질수 있으므로 대단히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어떠한 불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필요한 제언이나 수정을 요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기장의 결정이나 조종에 대해 부기장이 조언이나 지적, 제언을 했을경우 기장이 무시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핀잔을 준다거나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화속에서 부기장의 조언이 무시되거나 기장이 핀잔을 주었는데 기장의 결정이 안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에 주었다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을테지요. 그 예가 바로 대한항공 801편 참사입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여러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자체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항공사들은 조종사에게 업무와 관련한 대화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게 하고(아무래도 영어에서는 존칭어 체계가 많이 발달하지 않았으니까요 은연중 높임말을 사용해야함으로서 나타나는 완곡어법의 사용을 줄일 수 있겠지요) 기장이 부기장의 조언이나 제언을 3번이상 무시할경우 부기장이 조종권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이러한 제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CRM 관련 연구가 우리나라 보다 먼져 이루어진 서구 국가들의 일부 항공사에서는 조종사들이 서로 'Captain', 'Co-Captain' 이라는 직함 대신 'Mr~', 'Ms~' 와 같이 서로의 성이나 이름을 부르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승무원의 의사소통과 상호 협력 장려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CRM인데 1981년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처음 실시되었고 그 중요성은 ICAO에서 인정해 적극적으로 CRM 홍보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항공사들과 조종사 교육기관은 조종사들에게 단순히 각종 영어 시험, 비행기 조종 훈련 뿐만 아니라 CRM(Crew Resource Management, 승무원 인적자원 관리) 교육 역시 필수 코스로 넣고 있고 국내에서도 심리학자와 조종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CRM 을 가지고 활발한 토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장 네이버 학술정보에 검색 해보아도 이와 관련한 굉장히 많은 논문이 나옵니다.)

사실 CRM 은 비단 항공기 조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반성하며 적용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판단은 잘못되었을것이라는 전제를 하지는 않았는지, 또 후환이 두려워 꼭 해야할말을 윗사람에게 제대로 하지는 못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권위는 그저 사라져야할 '똥군기' 일 뿐이지요.